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치코 상황후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예비 황태자비 시절, 외국에서도 상당히 큰 화재였는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. 1959년 3월 23일자 호. [[파일:michiko shoda time.jpg|width=175]] * 남편 [[아키히토]] 덴노가 생전 퇴위 의사를 내비친 대국민 영상 메시지를 발표하기 전에 두 아들([[나루히토]], [[후미히토]])과 상의했다고 밝혔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001&aid=0008765540|#]] * 황후가 된 후로는 이미지가 무척 좋지만, [[황태자비]] 시절에는 지금의 며느리들([[마사코 황후]], [[키코 비]])처럼 이미지가 무척 안 좋았다. 상술했던 내용처럼 [[나루히토]] 친왕이 [[아키히토]] 덴노의 아들이 아니라거나, 미치코 황후가 시집오자마자 첫째 시누이 [[히가시쿠니 시게코]]가 죽은 것을 두고 "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!!"라고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. 그리고 지금의 며느리들처럼 아랫동서 [[히타치노미야 하나코 비]][* 평민 출신인 형님 미치코 황후와 달리, 옛 [[화족]] 가문 출신이다. 평민 출신의 큰며느리를 미워한 [[고준 황후]]가, 작은며느리는 화족 가문 출신으로 직접 고른 것이다. 단 [[하나코 비]]는 (남편 [[마사히토]] 친왕의 문제로) 아이를 낳지 못했다.]와의 신경전도 꽤 구설수에 올랐다고 한다.[* 미치코 황후가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을 일체 비난하는 일 없이 침묵을 지키는 기품 있는 자세를 보여주자, 많은 [[일본인]]들이 감명을 받았다. 덕분에 주간지 등의 비방 기사가 종식되기도 했다고 한다.] 하지만 지금은 이미지가 무척 좋은 걸 보면, [[마사코 황후|마사코 황태자비]]가 황후가 되거나, [[히사히토]] 친왕이 덴노가 되어 [[키코 비]]가 덴노의 어머니가 된다면 이들의 이미지도 바뀔지도 모른다. 그리고 현재 [[마사코 황후|마사코 황태자비]]는 시이버지 [[아키히토]] 덴노의 생전퇴위 발언과 딸 [[아이코 공주]]의 우수한 성적을 기점으로 이미지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하더니, 2019년 5월 1일자로 황후가 된 지금 부정적 시선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다. * 미치코 황태자비는 시어머니 [[나가코 황후]], 마츠다이라 노부코(松平信子)[* [[이방자]] 비의 친정어머니인 나시모토 이츠코의 여동생. 즉 이방자 비의 이모가 된다. 또한 노부코는 [[다이쇼 덴노]]의 차남 [[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]] 친왕의 장모이자, [[가쿠슈인]] 동창회장을 지내는 등,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황족들과 [[화족]]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다.], 나시모토 이츠코(梨本伊都子)[* [[이방자]] 비의 친정어머니. 평민 출신인 쇼다 미치코가 황실로 시집온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하여, "이제 [[일본]]도 다 끝나 버렸구나!!"라는 글까지 남겼다.] 등 옛 황족&화족 부인들로부터 일거수일투족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비난을 받았다. 또한 당시 20세기 후반에 세계 각국의 왕실제도가 혁명으로 무너져, 결혼식 퍼레이드 즈음에도 폭도가 마차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,[* [[https://youtu.be/JPIBGRwRDx0|마차습격 장면이 찍힌 퍼레이드 영상.]](1분 4초 경) 이때 미치코 황후는 깜짝 놀라 쓰러지듯 몸을 움츠리며, 마차의 마부들과 경호원 및 경관들이 황태자 부부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며 폭도를 떨어뜨려 놓는다. 여담으로 마차를 습격한 폭도는 19살의 청년으로 평소 천황제에 반대해왔고, "황족의 결혼식에 3억엔에 가까운 세금을 쓰는 게 말이 안 된다"고 생각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. 불경죄 같은 건 패전 이후 법에서 삭제되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구류 50일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지만, 근왕의식이 잔존하던 당시 [[일본]]의 사회 분위기 탓에 누나가 파혼당하고 형이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.] 고난의 나날이 계속되었다. 하지만 미치코 황태자비는 당시 측근인 쿠로키 동궁시종에게 "어떠한 때라도 [[황태자비]]로서 의무를 최우선으로 하고, 개인적인 일은 그에 다음하는 것"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, [[아키히토]] 황태자의 내조에 최선을 다했다. 1984년(쇼와 59년) 은혼식인 결혼 25주년 회견에서, "[[부부]]로서 서로 몇 점을 매기고 싶은가"라는 질문에 대해서 [[아키히토]] 황태자는 "점수를 매길 순 없지만 노력상이라는 걸로"라는 대답을 했고, 미치코 황태자비는 "나도 매겨 드린다면 점수는 없고 감사장을"이라고 답해, 기자들이 감탄했다. 사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잘 맞는 대답이다. * 목소리가 매우 곱고 부드럽다. [[https://youtu.be/B7FuabF-01M?t=3m53s|1993년 큰아들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식 영상]]의 댓글들을 보면 알겠지만(3분 53초 경), 미치코 황후의 아름답고 자애로운 목소리에 외국인들도 감탄할 정도. 다만 이후 4개월 뒤 실어증에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… 장남인 [[나루히토]] 황태자 또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성치고는 목소리 톤이 부드럽다. * 어머니 후미코는 1988년에, 아버지 히데사부로는 1999년 사망으로, 시부모들보다 1년 일찍 사망하였다. 정확히는 [[쇼와 덴노]] 사망 1년 전에 후미코가, [[고준 황후]]의 사망 1년 전에 히데사부로가 사망한 것. 황실에서는 친정 부모들의 제삿날에도 친정에 못 가게 했다고 한다. 아버지 히데사부로가 사망하고 나온 어마어마한 유산을 장녀로서 받아야 했지만 상속받지 않았다고 한다. "이제 일반인이 아니라 황족이기 때문"이라며 거절했다고.[* 물려받은 유산은 미치코 황후의 친정인 쇼다 가문의 소유이기 때문에, 황실비처럼 황실로 흡수되지 않고 사인 대 사인으로 상속되었을 자산이어서 미치코 황후 개인의 재산이 된다고 한다. 만약 유산상속을 받았더라면 [[영국]]의 [[다이애나 스펜서]] 왕세자비처럼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. (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친정 스펜서 백작가문의 재산은, 다이애나의 두 아들 [[윌리엄 왕세손]]과 [[해리 왕자]]가 물려받게 되었다.)] 히데사부로가 사망한 후 닛신제분은 남동생 오사무가 물려받아 이어지고 있다. *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40대 이후로 [[눈썹]]의 위치가 이마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.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보도된 바 없지만, 눈꺼풀이 늘어지는 질병인 안검하수, 혹은 경추성신경근증 등의 질병을 원인으로 추측하는 시각도 있는 모양.[[https://okboook.com/mitikosama/|#]] [[https://buzzlog.net/archives/9481#i-3|#]] 어찌되었든 이로 인해 나이가 더 들어보이게 되었다. 실제로 40대부터 눈에 띄게 급노화가 진행되었다. 혹독한 시집살이로 인해, 일찍부터 나이보다 심하게 늙어버린 것이다. * [[마사코 황후]]와 [[키코 비]]가 황실로 시집왔을 당시, 각각 [[루비]] 반지와 [[진주]] 반지를 선물했다. [[분류:1934년 출생]][[분류:분쿄구 출신 인물]][[분류:일본 황후]][[분류:세이신여자대학 출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